어린 자녀들이 있는 가정에서는 아이들이 열이 떨어지지 않으면 정말 걱정이 됩니다. 해열제를 먹이고 시간이 좀 지난 후에 체온계로 열을 재고, 물수건으로 얼굴과 몸을 닦고 또 열을 잽니다. 이런 상황에 온도계가 없었으면 얼마나 불편하고 걱정이 됐을까요?
오늘은 우리의 체온을 정확하게 재어줄 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온도를 측정할 때 사용하는 온도계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그 유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세기경 과학자들은 액체, 혹은 기체의 온도가 끊임없이 변하는 것에 따라 그것들의 질량이나 부피도 따라서 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변화를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해 온도 측정기라는 것을 고안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단순한 것은 유리관이었는데, 그 관의 한쪽 끝을 물이 든 작은 유리병에 담가서 온도를 측정했습니다. 온도가 상승하면 관 속의 공기가 팽창하여 물기둥이 내려갔던 것입니다.
1600년경에 갈릴레오(Galileo)는 온도에 따라 부피가 변하는 물을 이용하여 온도 측정기를 발명했습니다. 1641년에는 토스카니 대공이 눈금을 표시한 유리관에 알코올을 넣어 봉인한 온도계(thermomete)를 만들었습니다. 1644년에는 영국의 과학자인 로버트 후크(Robert Hooke)가 기준이 되는 눈금을 0으로 표시한 온도계를 고안했습니다.
1714년에 독일인 물리학자 가브리엘 파렌하이트가 수은 온도계를 발명한 후에야 과학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눈금이 있는 온도계가 나타났습니다. 또한 그는 오늘날에도 일부에서 사용되고 있는 화씨 눈금을 개발했습니다. 그는 물이 어는점을 32도로 하고 끓는 점을 반원의 내각인 180도 보다 높은 지점, 즉 212도로 정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고도가 놓아지면 기압이 내려가면서 끓는 점이 낮아진다는 것도 발견했습니다.
온도계에 어는점과 끓는점 사이를 180개의 눈금으로 매긴 것에 대해 다른 학자들은 이것을 어색하게 여겼어요. 1742년 스웨덴인 천문학자 안데르스 셀시우스(Anders Celsius)는 어는점을 0, 끓는점을 100으로 하고, 그 사이를 정확히 100개로 나눈 눈금을 제안했습니다. 18세기 후반에는 프랑스가 이 새로운 섭씨 단위를 미터법의 일부로 수용했으며, 1940년대에는 국제 과학계가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코로나19 확진세가 급격하게 증가하여 수도권지역은 내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로 격상됩니다. 불안하고 불편한 이 시기에 누군가의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으로 인한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고 이른 시일 안에 일반화될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